구구절절. 허물





급하게 단기 과외를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. 한 달 안에 1등급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. 하지만 그런 것을 바라고 연락하는 사람이 태반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. 내년에 다시 볼 생각이 있느냐고. 과외의 목적이 단기간에 올릴 수 있는 만큼 올려서 내년에 지속적인 부모의 지원을 받는 데에 있다고 하기에 수락했다.

학생이 제시한 가격에서 깎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.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힘든지 구구절절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. 내 어릴 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외면하기가 힘들었다.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안 봤을 가격에 승낙을 했다.



두 번 수업을 했다. 시간은 빠듯했고, 내 시간도 빠듯했다.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새벽에 잠을 청하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. 그만하고 싶다고. 사정을 설명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구구절절했다. 요지는 그거였다. 쪽집게를 원하는데, 나는 너무 원론적인 수업을 한다고.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요, 라고 덧붙이는 말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.

화가 나면 나는 더 차가워진다. 정중하게 수업 한 것에 대해서는 과외비를 받아야겠다고 했더니, 사정 뻔히 알면서 어찌 그러시냐고. 첫 번째 수업은 그냥 체험해본 걸로 치고 1회분만 주면 안 되겠냐고 구구절절한 메시지가 이어졌다. 더 듣기가 싫어서 치웠다. 아. 그냥 구구절절한 사람이었구나. 그 돈 없어도 나는 안 죽는다. 물가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.



가끔은. 약해지는 부분이 있다. 너는 평소에 냉정하면서 가끔 바보 같은 짓 하더라, 하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.
돈 받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에 내 수준에서 어느 정도의 호의를 베풀었다. 마음을 건넸다. 이런 마음들이 짓밟힐 때마다 아프다. 내가 병신인지 아닌지 모르겠다. 가끔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. 오늘 같은 밤이다.

떠나간 사람들과 마음을 짓밟았던 이들을 생각한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마음을 다시 편다.

높은 마음. 가을하늘같은.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다.





덧글

  • 커부 2015/10/11 09:58 #

    아플때마다 높아지는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,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..병신은 그냥 과외생쪽인데요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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